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3. 13世 〉12. <부정공>통덕랑공휘시성행장(通德郎公諱時聖行狀)
1. 문헌 목록 〉13. 13世 〉14. <부정공>진사증통훈대부호조좌랑준회광휘시일행장(進士贈通訓大夫户曹佐郎遵晦公諱時一行狀)
1. 문헌 목록 > 13. 13世 >  
13.<부정공>통덕랑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휘시억묘표(通德郎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諱時億墓表)
通德郎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諱時億墓表 昔孔夫子題季札之墓曰嗚呼有呉延陵季子之墓盖聖人之筆畧而盡矣後人銘人墓或加溢辭不法聖人多矣世俗流弊未甞不太息也日趙君光鉉來謂余曰吾八代祖考墓碣久闕願勿靳一言用表隧道余其非人累辭不獲則乃跪而作曰德門如彼墓碣至今不具字何則要之君之祖先謙謙之德憎俗嫉僞之所致而然也然爲子孫者守其謙德則可至於墓表不然若遭滄桑慮或有失也謹按公狀内行之實可稱道者不止一二有二子孝友篤摯終始同室不析產業此人倫之大者也公之錫類如是乎可推矣禮云先祖無媺而稱者誣也有善不知不明也知而不傳不仁也此三者君子所耻也君能法聖人之筆而無溢辭述祖德又合乎禮經而免恥則道固有併行而不相背者也以爲如何光鉉曰此吾之志也遂與諸孫東必吉鉉等將謀樹一麗牲石於墓左猗歟休哉公諱時億字聖老遠祖諱璋侍中諱元吉玉川府院君諱瑜官副正 麗末獨喪三年前後廬墓我 世宗朝聞訃遣禮官禮葬旌閭諱智崙與伯仲季築相好亭湛樂曾祖諱大春與河西玉峰兩先生爲道義交祖諱懋號撫松亭考諱晬宣敎郎妣宜人光山金氏副司直德輝孫女 崇禎丙寅生公幼有異質屹如成人居喪盡禮鄉里稱頌己未十月十五日卒以孫鵬錫壽職至蒙推榮之典墓在住巖面下金谷乙坐原配淑夫人玄風郭氏維城女有女士風生以庚午卒以丁巳墓合塋子維章號守亭以季房壽職嘉善大夫次維憲女閔昌龜偰亨殷尹蘊李邦郁孫祺錫廷錫圭錫元錫鵬錫壽階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曾玄以下不盡錄嗚呼蔭功所及公之後裔賢且衆而君其最著者也賴君殫力堂斧改新三尺貞珉儼然屹立百世之下過者必式 乙丑端陽節 星州 李敎暘 謹撰 통덕랑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휘시억묘표(通德郎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諱時億墓表) 옛날 공자(孔子)가 계찰(季札)의 묘도에 쓰되, 『아! 오나라 연릉에 계자의 무덤이 있다.』 하였는데 대개 성인의 붓은 간략하지만 그 할말을 다 한다. 그런데 후세 사람은 사람의 묘도에 새길 때 혹 쓸데없는 말을 더 하거나 성인을 법을 하지 아니함이 많으니 세속의 흐르는 폐습을 일찌기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조군 광현(光鉉)이 와서 나게에 말하되, 『우리 八대조 고 묘갈을 오래 궐하였으니 원하건대 한 말을 아끼지 말고 묘도에 표해달라.』 하였다.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여러번 사절하다가 마지 못하여 이에 꿇어앉아 말하되, 『덕문(德門)이 저렇듯 한데 묘갈을 아직 못 갖춘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 원인을 요해보면 그대 선조의 겸양(謙讓)한 덕으로 세속의 질투와 허위를 싫어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손된 자로서 겸덕을 지키는 것은 좋지만 묘표에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만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을 만나면 혹 실전이 될까 염려된다.』 삼가 공의 행장을 안찰하니 내행(内行)의 실적을 가히 칭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요, 두 아들이 효우가 독실하여 시종 한 집에 살고 분산을 아니 하였으니 이는 인륜의 큰 벼리를 지킨 것이요, 공의 지극한 효행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쳤음을 이로해서 가히 미루어 알겠다. 「예기(禮記)」에 가로되 『선조가 선행(善行)이 없는데 칭도한 것은 속인 것이요, 선행이 있는데 알지 못한 것은 밝지 못한 것이며, 알고 전치 아니한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다.』 하여 이 세가지를 군자가 부끄러워 한 바이니 그대가 능히 성인의 필법(筆法)을 본받아 꾸민 말이 없이 선조의 덕행을 기술하고 또 「예기」에서 말한 『부끄러움을 면한즉 도가 진실로 아울러 행하고 서로 위배되지 않을 걸세. 그렇지 않은가?』 광현이 가로되 『이는 나의 뜻이다.』 하고 마침내 여러 후손 동필(東必), 길현(吉鉉) 등과 더불어 장차 묘소 좌측에 아름다운 생석을 세우고자 도모하니 거룩하고 아름답도다. 공의 휘는 시억(時億)이요, 자는 성로(聖老)며, 건곡선생 휘 유(瑜)의 후예로 고의 휘는 수(晬)인데 선교랑(宣敎郎)이요, 비는 의인 광산김씨 부사직(副司直) 덕휘(德輝)의 손녀였다. 숭정(崇禎) 병인년에 공이 출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른 기질이 있어 성인(成人)과 같이 우뚝하였으며 초상과 장사에 예제를 다하니 향방이 칭송하였다. 기미년 十월 五일에 별세하였는데 손자 붕석(鵬錫)의 수직(壽職)으로서 추영의 은전을 받았고 묘소는 주암면 하금곡 을좌언덕에 있다. 배는 숙부인 현풍곽씨(玄風郭氏) 유성(維城)의 딸인데 여자로서 선비다운 기풍이 있었으며 경오년에 출생하여 정사년에 별세하니 묘소를 합장하였다. 남은 유장(維章)으로 호는 수정(守亭)인데 계방수직으로써 가선대부요, 차는 유헌(維憲)이며, 여는 민창구(閔昌龜), 설형은(偰亨殷), 윤온(尹蘊), 이방욱(李邦郁) 처고, 손남은 기석(祺錫), 정석(廷錫), 규석(圭錫), 원석(元錫), 붕석(朋錫)인데, 붕석이 수계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요, 증현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 여음이 다 하지 아니하여 공의 후예가 어질고 또한 수가 많으나 그대가 가장 저명한 자로다. 그대의 전력에 힘입어 묘소를 개사하고 三척 곧은 돌이 높이 섰으니 백세 뒤에 지내는 자 반드시 절하리로다. 성주(星州) 이교창(李敎暘) 삼가 지음
 
1. 문헌 목록 〉13. 13世 〉12. <부정공>통덕랑공휘시성행장(通德郎公諱時聖行狀)
1. 문헌 목록 〉13. 13世 〉14. <부정공>진사증통훈대부호조좌랑준회광휘시일행장(進士贈通訓大夫户曹佐郎遵晦公諱時一行狀)